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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일하며 살아가며
Date 2023.09. 13 / Editor 버들 (@beoddle)
폭풍같이 일이 휘몰아치던 몇 주간의 시간이 지났다. 

일이 끝났다고 해서 또 며칠이고 쉬기에는 불안한 현대인의 생활이지만, 그래도 다음 마감이 돌아오기 전까지 한동안은 아침 저녁으로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그동안 방치했던 나 자신도 집도 조금씩 다시 돌볼 수 있다.

마감이 한창일 때는 그 무엇도 살피지 못한다. 아침마다 다도구를 준비해 마시던 차도 물을 끓여 티백이 담긴 큰 머그에 붓는 것으로 대신한다. 매일 한 끼는 꼭 정성껏 만들어 먹기로 스스로와 약속했지만, 하루에 한 끼를 겨우 챙기며 그마저도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다. 재활용 쓰레기가 쌓이고, 베란다의 식물들에게 물 주는 날짜도 어느새 훌쩍 지나있다. 수시로 소식을 주고받던 친구와 두 달째 카톡 한 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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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다른 일에 쓸 에너지가 전혀 없는 한정된 능력을 가진 인간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렇게 노동과 삶의 경계가 불분명한 생활이 그런 나에게 맞는 것이었을까 하는 자꾸 드는 회의감은 접어두고, 지금은 엉망이 되어버린 생활을 다시 추스를 때다.

다음 마감엔 좀더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려면 최소한 매일 얼만큼의 작업을 해 나가야 할지 계획을 세운다. (일단 세운다.) 시들시들한 화초에 물을 흠뻑 주고,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쓸고 닦는다. 마침 볕이 좋으니 도마와 행주도 열탕소독한 뒤 먼지를 탈탈 털어 널은 이불 옆에 걸어둔다. 제일 좋아하는 다기와 새로 뜯은 잎차를 넣은 차통을 작업 테이블 한쪽에 다시 세팅한다. 오래간만에 연락해도 머쓱함은 없고 보고싶은 마음뿐인 친구들과 안부를 나누고 약속을 잡는다. 마침 출간된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동네 책방에 주문하고 책이 입고되었으니 찾으러 오라는 연락을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연이은 밤샘에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아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다른 일을 찾아볼 것을 결연히 결심하던 나는 어느새 사라져 있는 것이다. 다음 마감이 가까워져도 이번에는 결코 그때 그 나를 만나지 않겠다는 지금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인 시간을 관리하는 데 성공하여, 부디 지금의 평화로운 일상을 오래오래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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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닮은 삶’ 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꼈던 차와 닮은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글, 이미지, 영상, 사진 무엇이든 좋아요. 이것도 차와 닮은 삶이지 않을까? 라는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