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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계절을 만끽하며 살아가기
Date 2023.07. 04 / Editor 버들 (@beoddle)
여름을 참으로 싫어했었다. 몸에 열이 많고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 탓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늘 선선하고 쾌적한 봄과 가을은 짧기만 하고, 덥고 끈적끈적하고 비릿한 여름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특히 장마철은 끔찍했다. 비 오는 날의 차분함을 사랑하지만 여름 장마는 축축하고 짜증스러웠다. 또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들이닥치면 사방에서 울어대는 매미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서 더러 매미들은 밤낮을 구분치 못하고 밤새 쇳소리가 나도록 울어 재꼈다. 여름은 나에게 견뎌야만 하는 계절이었다.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독립해서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였을까, 아니면 그보다도 훨씬 전, 여행하던 일본의 낯선 거리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푸른 수국을 보았을 때였을까, 그도 아니면 여름내 아기와 집 안에만 있는 친구에게 보내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와 물에 젖어 더욱 선명한 주황의 능소화 영상을 찍던 때부터였을까. 여름의 축축한 공기가 더이상 불쾌한 침략자로 느껴지지 않았을 때, 나는 비로소 여름의 많은 것을 받아들여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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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냉장고에 넣지 말라는 빨간 자두를 찬물에 씻어 얼음과 함께 그릇에 담고, 여름엔 늘 냉침해두는 녹차 한 잔을 역시 얼음을 가득 넣은 유리잔에 따라 거실로 가져온다. 먼 이국의 보사노바 리듬이 흐르는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걸고 선풍기 바람이 솔솔 부는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우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비가 와서 습도가 높은 날에는 차향이 특히 더 좋아진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과학적인 이유도 있을테지만, 나는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뿌리는 차밭에서 무서운 생명력으로 잎을 내미는 차나무들을 상상한다. 끓인 물을 돌돌 말린 찻잎 위로 부을 때 공기중에 퍼지는 향기도, 더욱 달큰하고 미끈하여 부드럽게 삼켜지는 차의 맛도 모두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봄에 나는 새잎의 연둣빛도, 십일월의 창백한 빛도, 한겨울 바깥으로 나서면 코끝에 스며드는 장작 냄새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제 나는 여름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기며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얼마나 충만한지. 이미 여기에 당도해 있는 여름과 장마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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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의 커다랗고 말간 얼굴은 다가올 장마와 한여름을 기다리는 마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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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를 맞는 시기 식물의 생명력은 무시무시해서, 자라난 새 가지와 잎이 며칠만에 사람 다니는 길을 뒤덮어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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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나가면 담벼락 가득히 피었던 능소화는 투둑 투둑 모두 진다. 
‘차와 닮은 삶’ 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꼈던 차와 닮은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글, 이미지, 영상, 사진 무엇이든 좋아요. 이것도 차와 닮은 삶이지 않을까? 라는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