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참으로 싫어했었다. 몸에 열이 많고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 탓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늘 선선하고 쾌적한 봄과 가을은 짧기만 하고, 덥고 끈적끈적하고 비릿한 여름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특히 장마철은 끔찍했다. 비 오는 날의 차분함을 사랑하지만 여름 장마는 축축하고 짜증스러웠다. 또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들이닥치면 사방에서 울어대는 매미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서 더러 매미들은 밤낮을 구분치 못하고 밤새 쇳소리가 나도록 울어 재꼈다. 여름은 나에게 견뎌야만 하는 계절이었다.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독립해서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였을까, 아니면 그보다도 훨씬 전, 여행하던 일본의 낯선 거리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푸른 수국을 보았을 때였을까, 그도 아니면 여름내 아기와 집 안에만 있는 친구에게 보내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와 물에 젖어 더욱 선명한 주황의 능소화 영상을 찍던 때부터였을까. 여름의 축축한 공기가 더이상 불쾌한 침략자로 느껴지지 않았을 때, 나는 비로소 여름의 많은 것을 받아들여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