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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나의 버드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Date 2023.05. 11 / Editor 버들 (@beoddle)

새봄의 버드나무는 싱그럽다. 원래의 가지 끝에서 새로이 뻗은 가지가 낭창낭창하고, 갓 나온 새순들은 얇고 보드라워 만지면 물기가 묻어날 듯 촉촉하다. 그리고 그 빛깔. 사람이 조색한 그 어느 연두색보다 여리고 생기가 넘쳐, 보고 있으면 가슴속에서부터 간지러움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새봄의 버드나무가 이러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늘 오가는 길목에 서 있던 버드나무 덕분이었다. 특히 봄의 따스해진 공기가 살랑 바람을 일으킬 때, 느리고 가볍고 미세하게 움직이는 가지와 잎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졸업 이후 내가 학교로 돌아간 것은 꼭 십 년만이었다. 학교는 그사이 낡아진 이모저모를 손보고 새 건물도 지어 올렸다. 그래도 대체로 눈에 익은 모습이었지만, 몇 걸음 더 옮겨 도착한 그곳에, 새로 정비된 길이 매끈한 그곳에, 버드나무는 없었다. 

변화가 빠른 시대를 살고 있고, 많은 것들이 신속히 고안되었다가 실용성과 효율성의 논리에 의해 폐기된다. 그렇지만 나처럼 무엇이든지 느린 사람은 머리로는 그 불가피함을 이해하더라도 마음으로 납득하기가 늘 어렵다. 새로이 생겨나는 것들은 나의 필요를 가려 받아들이고 말고를 결정하면 되지만, 한번 마음을 주었던 것의 사라짐은 매번 서운하다. 

또다른 봄의 어느 날이었다. 하동에서 올라온 햇 세작을 입구가 넓고 둥근 고백자 숙우에 담았다. 끓여서 한 김 식힌 물을 붓자, 바싹 말라 있던 찻잎이 천천히 펴지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하늘하늘 제 몸을 펼치며 주변을 연두빛으로 물들여가는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 작고 섬세한 움직임, 우아한 춤 같아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드는 몸짓은 꼭 나의 버드나무의 그것 같았다. 

어쩌면 무언가가 내 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반드시 그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도 우리는 종종 믿지 않는가. 지금은 곁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 내 삶에 남긴 흔적이나,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를 돌보고 있다고 생각되는 미지의 힘 같은 것. 

교정의 버드나무는 이제 그 자리에 없지만, 그 시절 그 길목을 지나며 사소한 것에 감탄하고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던 시간은 나를 지금의 내가 되게 한 큰 부분이었다. 사라진 듯 보이는 것들은 그렇게 형태와 성질을 바꾸어, 그렇지만 그 본질은 오롯이 간직한 채로, 여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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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교토 여행에서 찍었던 버드나무 (c)beoddle

‘차와 닮은 삶’ 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꼈던 차와 닮은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글, 이미지, 영상, 사진 무엇이든 좋아요. 이것도 차와 닮은 삶이지 않을까? 라는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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