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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가족 이야기
Date 2023.05. 06 / Editor 버들 (@beoddle)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뒤늦게 화제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봤다. 영화는 멀티버스(multi-verse)의 우주를 상정하고 매번 갑작스럽게 평행 세계들 사이를 넘나드는데, 어느 세계에서는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딸인 존재들이 다른 세계에서는 목숨을 노리는 적이 되었다가 조력자도 되었다가 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식을 뛰어넘는 표현에 감탄하던 중, 이 영화는 이 순간을 위해 지금껏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온 것이구나 싶은 어떤 장면에서 울음이 팍 터졌다. 그 장면은 많은 평행 세계 중 돌멩이의 세계였기 때문에, 결코 배우의 연기만으로 감동해서 운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굳이 덧붙여본다. 

가족은 나에게 늘 그런 존재였다. 평생을 보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 노력했으나 도달한 결론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고, 단지 ‘나에게’ 그들이 어떤 의미인가만을 어렴풋이 생각해볼 수 있을 뿐인. 단순히 ‘가족은 사랑이지’ 라거나 ‘가족은 지옥이야’ 라고 일축해서 말하기에는 지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왔고, 그리고 또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는 수많은 감정의 스펙트럼이 있다. 

지금의 나에게 가족은, 맛있는 차를 발견하면 맛보여 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커피만 마시는 가족들이 있는 본가에 갈 때면 주섬주섬 다기를 챙긴다. 도착해서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면 지지난달보다 또 부쩍 늙은 부모님 모습에 뭉클하다. 짐을 풀다 다기가 나오면 열에 아홉 번은 번거롭게 이런 걸 챙겨왔냐고 면박을 듣는다. 본가에 가서 차를 우리면 집에서 혼자 마실 때보다 양이 많아서 그런지 좀 맛이 없는 것 같다. 속상한 마음에 제풀에 삐쭉거리면 부모님은 우리는 자식을 별나게 키우지 않았는데 매사에 쓸데없이 까다롭다며 혀를 끌끌 찬다. 모든 것은 다 그 나름의 쓸데가 있는 것인데 쓸데없다는 말에 마음이 상한 나는 말도 안 하고 방에 콕 처박혀버린다. 주말드라마 시작할 시간이 되면 아빠는 내가 삐진 걸 모르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꼭 방문을 벌컥 열고 부른다. 일단 드라마가 시작되면 내 감정 따위는... 휘말려버린다. 

물론 위에 그린 어느 주말 풍경은 희극과 비극 중 소품 정도의 희극만을 골라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소동극 안에 부모님 두 분과 곰돌이 같은 동생이 다 있어 주기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평범하지는 않지만 특별할 것도 없는 그 모든 가족의 역사와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이 다함께 소용돌이치는 에브리씽 베이글 같은 이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는 감히 내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부디 차가 맛있게 우려지기를 바라며, 어버이날을 끼고 본가를 방문할 찻짐을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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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닮은 삶’ 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꼈던 차와 닮은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글, 이미지, 영상, 사진 무엇이든 좋아요. 이것도 차와 닮은 삶이지 않을까? 라는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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