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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햇차를 기다리는 마음
Date 2023.04.18 / Editor 버들

예전에 어떤 사무실의 책상 하나를 빌려 개인 작업실처럼 사용했던 적이 있다. 그 기간에 나는 맥파이앤타이거를 알게 되고 더불어 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른한 오후에 마시는 녹차가 좋았고 마침 차를 우릴 때 사무실 사람들이 있으면 함께 마시곤 했는데, 어느 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어, 녹차인데 신기하게 텁텁하지 않네?” 

차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조금 있다. 찻잎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효 등을 거치지 않은 녹차는 우리는 물의 온도에 민감한 편이다. 여린 잎에 펄펄 끓는 물을 부어버리면 혀뿌리까지 스며드는 쓰고 텁텁한 맛이 한꺼번에 우러나오고 찻잎이 익어버린다. 익은 찻잎에서는 미세하게 시큼하고 비릿한 맛이 나고 거듭 물을 부어도 더이상 새로운 맛이 우러나지 않는다. 한국 녹차의 경우, 세작에서 우전, 특우전으로 갈수록 잎이 여려지므로 물의 온도도 그에 맞게 낮추어주어야 한다. 아마 이런 점에 유의하여 녹차를 우렸기에 쓰고 떫은 맛이 거의 없는 것을 그 사람은 ‘텁텁하지 않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매해 이맘때면 차 산지에서 햇 녹차가 나온다. 밀봉된 차를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만 잘 하면 연중 언제 마시든 큰 차이는 없겠지만, 그래도 산지에서 갓 올라온 햇 녹차의 신선한 맛에 비할 것은 아니다. 해마다 하동 햇 녹차를 여러 봉 사서, 함께 마주 앉아 차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낸다. 간단한 다기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잎차를 그대로 보내고, 늘 바빠서 간편한 걸 선호하는 사람에겐 실 따위로 윗 부분을 조일 수 있는 티백에 균일하게 소분하여 넣어 보낸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짧은 안부 인사를 적은 카드를 보태는 일이다. “매년 돌아오는 햇차 시즌이라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잔소리처럼 느껴질 위험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덧붙인다. “녹차는 끓여서 두세 김 정도 식힌 물에 우려주세요. 끓인 물이 담긴 용기에 손을 살짝 대 보았을 때 따끈할 정도거나, 아주 뜨거운 김이 위로 더이상 올라오지 않는 정도면 적당해요. 이렇게 식힌 물로 우린 녹차는 쓴맛 없이 고소하고, 톡 쏘지 않지만 청량하답니다.” 

시시콜콜 적지는 않지만 아마 제일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일 터. ‘할 수만 있다면 마주 앉아 최고로 맛있는 녹차를 우려 주고 싶어요. 지난 한 해 내 삶에 소중한 사람으로 있어 주어 고맙고, 올 한 해도 모든 계절 잘 부탁합니다. 함께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당신이 있어서 햇 차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봄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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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닮은 삶’ 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꼈던 차와 닮은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글, 이미지, 영상, 사진 무엇이든 좋아요. 이것도 차와 닮은 삶이지 않을까? 라는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