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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여행을 위한 짐 꾸리기
Date 2023.04.10 / Editor 버들

“여행을 좋아한다”고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낯선 환경을 즐기지 못하고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며 잘 모를 때는 일단 방어적인 성향인 탓이다. 그럼에도 스무 살 이후로 떠났다 돌아오기를 수없이 반복한 것을, 나 자신도 도무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떠나지 못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특별히 문제없다고 여겼으나 언제부턴가 시름시름 아팠다. 스스로는 단순히 몸의 병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수개월 동안 전전한 병원들에선 항생제와 소염제와 위장약을 처방했지만,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이들은 내게 영 다른 처방을 내렸다. “여행을 떠나라.”

어렸을 때와는 여러모로 여행 짐을 꾸리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가방이 무거우면 이동할 때마다 골병들게 된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한다.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넘는 여행 중 입을 것으로 청바지 한 벌, 무릎보다 조금 긴 길이의 편한 원피스 한 벌, 얇은 티셔츠 하나와 카디건 하나. 방수가 되는 바람막이 재킷 하나, 마지막으로 격식을 차려야 하는 공연장에 가게 될 때를 위한 가볍고 우아한 원피스 하나. 화장품도 클렌저도 올인원 기능을 하는 것으로 챙긴다. 신발은 가볍고 쿠션감이 좋은 스니커즈와 실내용 얇은 슬리퍼 각각 한 켤레씩. 여행 중에도 일을 완전히 쉴 수는 없기에 마지못해 챙겨보는 노트북. 곱씹어 읽고 싶은, 엄선한 책 두 권.

줄어든 짐 덕분에 남은 자리엔 실은 제일 처음 준비해 두었던, 부드러운 천으로 잘 감싼 다기를 푹신한 누빔 주머니에 넣어 챙긴다. 개완과 잔은 비교적 튼튼해 가방 안에서 잘 깨지지 않을 법한 것으로 고르고, 차는 하루 중 언제 마셔도 좋을 보이숙차와 호지차를 조금 부족하게 가져간다. 경험적으로 여행지에서 차 상점을 발견하게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여행지에 일상의 한 부분을 지니고 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에도 문을 열어 둔다.

매일의 문을 여닫는 나만의 리추얼인 차 생활. 그에 필요한 차 살림까지 모두 챙기고 나니, 이제야 안심이 되고 여행을 앞둔 설렘이 찾아온다.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면 분명히 또다시 길을 잃고 헤맬 것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일단 숙소에 도착하면 나는 물을 올리고 챙겨간 다기들을 꺼내 익숙한 순서로 늘어놓을 거다. 개완에 물을 붓고 언제나처럼 앗 뜨거, 하면서 찻물을 따르는 동안, 여기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말랑한 마음이 두려움에 경직된 표정과 긴장으로 솟은 어깨를 풀어줄 것이다. 그걸 믿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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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닮은 삶’ 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꼈던 차와 닮은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글, 이미지, 영상, 사진 무엇이든 좋아요. 이것도 차와 닮은 삶이지 않을까? 라는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