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늘 멀리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사이인 친구가 한 명 있다. 일본인인 친구와 나는 처음부터 일본어도 한국어도 그렇다고 영어도 아닌 제3의 언어로 소통했다. 전공도 같고 성향도 취미도 비슷하여 앞으로도 비슷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했었지만, 첫 만남으로부터 15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삶의 모습은 퍽 달라져 있다.
몇 년 전 보름간 일본으로 친구를 보러 갔다. 반가운 친구가 왔다고 임의로 멈춰 세울 수 없는 친구의 일상에 나는 기꺼이 함께 올라탔다. 아침이면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자전거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친구 직장 앞에서 헤어져, 나는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후에는 친구의 퇴근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간단히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 남편이 퇴근하면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책을 읽거나 퍼즐을 맞추거나 보드게임을 했다. 아빠가 아이들과 목욕을 하는 동안 친구와 나는 주방과 집안 정리를 마쳤고, 목욕으로 나른해진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우리는 침실이 있는 2층에서 살금살금 내려와, 마침내, 마침내 찻물을 올렸다.
그리고 이 시간은 방금 마무리된 빈틈없는 하루와 곧이어 시작될 또 다른 빈틈없는 하루의 사이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시간이었다.